유능한 자의 궤변은 힘든 토론을 만든다
나무위키 장판파
- 정부의 부당한 검열이 있었고, 해명은 허위 였음.
- 나무위키에 이러한 사실이 등재되는 것을 적극적으로 막으려는 사람(장판파)가
- 나무위키의 토론 규정을 악용하여 등재를 끝없이 지연시킴
- 형식 논리를 집요하게 공격
- 장판파는 철학적 또는 법률적 훈련을 받은 사람으로 추정됨
- 장판파의 편집 차단 시도를 저지하기 힘들었음 ← 568번의 토론 문답
- 장판파보다 더 논리학에 능한 사람(데커드 케인)이 등장하여 장판파의 논리를 파훼함
- 이후 관련 문서가 빠르게 업데이트됨 → 뉴 단간론파 V3 한국어판 심의 거부 논란 - 나무위키
LLM정리 - 게관위 폭로 사태로 알아보는 나무위키 편집전쟁 - YouTube
1. 사건의 발단
- 정부의 부당한 검열 발생
- 단간론파 3 게임의 한국 등급 거부
- 검열의 근거로 제시된 “동춘동 살인사건”이 사실과 다름
- 7년 만에 공개된 검열 회의록에서 해당 근거가 허위임이 밝혀짐
2. 나무위키에서의 검열 저지 시도
- 나무위키에 검열의 부당성을 기록하려는 시도 발생
- 특정 사용자(장판파)가 검열에 불리한 내용을 적극적으로 삭제
- 장판파의 전략
- 나무위키의 토론 규정을 악용하여 등재를 지속적으로 지연
- 편집 분쟁을 유도하여 자동으로 ‘토론’ 개설
- 토론이 시작되면 중재자(나무위키)의 판결 전까지 문서 수정 불가
- 끝없는 토론 연장으로 문서 등재 차단 효과 발생
- 형식 논리를 집요하게 공격
- 철학적 또는 법률적 훈련을 받은 사람으로 추정
- 논리적 오류를 지적하며 논점 흐리기
- 법률적 용어를 사용하여 중재자(나무위키)를 설득하려는 시도
- 고도의 논리 기술로 상대방을 압박하며 편집을 차단
3. 장판파 전략의 붕괴
- 장판파의 지속적인 논리 공세로 인해 편집이 장기간 차단됨
- 그러나 장판파보다 논리학에 능한 사용자(데커드 케인)가 등장
- 나무위키 규정과 논리적 근거를 이용하여 장판파의 논리를 파훼
- 논리적 오류를 정밀하게 반박하여 장판파의 주장 무력화
- 중재자(나무위키)가 기존 토론 합의를 파기하고 새로운 판결을 내림
4. 토론의 결말
- 568개의 메시지가 오가는 장기간의 논쟁 후 판결
- 중재자(나무위키)의 최종 판결
- 기존 토론 합의를 파기
- “뉴 단간론파 v3 한국어판의 심의가 동춘동 사건과 무관함”을 명시
- “여명숙의 해명이 거짓임”을 공식 기록
- 다중 관점(여러 의견) 서술 불가
- 장판파 트롤러의 패배
- 이후 관련 문서가 빠르게 업데이트됨
5. 사건의 시사점
- 정부의 검열이 허위 근거에 기반했음이 밝혀짐
- 나무위키의 토론 규정이 악용될 수 있음
- 철학적, 법률적 논리 훈련을 받은 사용자가 토론을 지연시킬 수 있음
- 논리학에 능한 사용자의 개입이 결정적 역할을 함
- 나무위키의 편집 전쟁이 법정 공방보다 치열할 수 있음
6. 마무리
- 연휴 기간 동안 해당 사건이 다시 떠오름
- 나무위키 편집 전쟁의 숨겨진 면모를 알게 됨
- 문서 한 줄 수정도 치열한 논쟁을 통해 결정됨
- “장판파 전술”의 집요함과 토론의 전략성이 주목받음
19세기 영국 의회 아동노동 제한 논쟁
19세기 영국 의회는 아동노동을 제한하기 위해 연일 논쟁을 벌였다. 찬반 진영은 날카롭게 대립했다. 그때 아동노동이 불가피하다고 한 사람들은 짧고 강력한 문장을 하나 제시했다. “아동노동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다.” 아이들이 공장에서 일하는 것은 누군가의 잔혹함 때문이 아니라 가난 때문이라는 것이다. 얼핏 그럴듯한 주장은 곧바로 아동노동의 규제나 철폐는 가족을 더 깊은 빈곤 속으로 밀어넣을 뿐이라는 논리로 연결되었다.
이 문장에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문장도 있었다. “노동이 복지이자 보호다.” 아이들을 일터에서 떼어내면 그들은 방치되고 타락할 것이기 때문에 아동노동은 착취가 아니라 훈육이고 사회로 편입되는 통로라는 설명이었다. 학교는 부족했고 복지는 없었으며 방치는 실제로 위험했었던 사정에 대한 이런 ‘사실주의적’ 묘사는 곧 아동노동이 가장 현실적인 차선이라는 주장으로 둔갑했다. 아이들을 위하는 말처럼 들리는 문장은 정작 아동의 복지와 보호에 침묵했다.
또 하나의 문장이 더해졌다. “국가는 가정에 개입할 권리가 없다.” 아이의 노동이 어떻게 사용되는지는 사적 영역이므로 국가는 그 사이에 끼어들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노동과 일터는 ‘외부세력’이 사사로이 개입해서는 안 되는 ‘신성한’ 시장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 문장이 등장하는 순간, 논쟁은 노동의 문제가 아니라 자유의 문제가 되었다. 아이는 사라지고, 금시초문의 권리가 등장했다. 자유는 실체를 잃고 모호할 때 지배의 언설이 된다. 이 세 문장은 묘하게 잘 맞물렸다. 가난을 말하고, 보호를 말하고, 자유를 말한다. 어느 하나도 틀린 말처럼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지나칠 정도로 성실했고 현실적이었다. 그 문장들을 말하는 이들 역시 스스로를 냉혹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지금 당장 가능한 것”을 말하고 있을 뿐, 감정에 흔들리는 사람들이 오히려 세상을 망친다고 생각했다.
시간은 흘러, 우리는 아동노동이 없는 사회에 마침내 합의했다. 치열하고 질기게 같이한 싸움 덕분이었다.